마르쉐는 왜 라당스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
농부, 제분가, 요리사의 손길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 우리밀의 여정은 함께 손을 맞잡고 추는 춤 ‘라당스(La Danse)’를 닮았습니다. 기후위기 속, 점점 위태로워지는 우리밀의 미래를 염려하며 지난해 우리는 열 농가의 열 가지 씨앗을 섞어 뿌리고 그 밀 다발에 ‘라당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농부의 밭에서 다양한 씨앗을 섞어 심는 것은 농부들의 오랜 지혜입니다. 프랑스에는 밀과 호밀을 섞어 만드는 ‘메테이유’라는 빵의 종류가 있습니다. 토양이 척박하고 기후가 밀재배에 적당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어디서나 잘 자라는 호밀을 ‘혼파’(하나의 밭에 두 종류 이상의 씨앗을 함께 뿌리는 방식)합니다. 이 밀로 만든 빵인 메테이유에는 아무리 기후여건이 좋지 않은 해에도 수확하기 위한 농부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작은 밭에서 벼 이외에도 밀, 보리, 수수, 조 등의 다양한 잡곡을 함께 길러 주식으로 삼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과도 닿아 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퍼져가는 ‘와이큐밀(YQ밀)’도 혼파를 통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례입니다. YQ밀은 2000년에 영국의 식물병리학자 마틴울프(Martin Wolfe)가 유기농연구센터(ORC Organic Research Centre)의 과학자들과 식물 육종가들의 도움으로, 저투입 조건에서 영국에서 잘 자라는 20종의 밀을 선택하고 교배해서 만든 품종입니다. 이 품종은 190여가지의 새로운 교배종 씨앗을 묶은 것으로, 2021년에는 하나의 밀 품종으로 공식 인정받아 합법적으로 판매가 허가되었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홋카이도에서도 사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밀농사를 짓는 나카가와 농부는 ‘블레 데 파퓰레이션(Ble de Population)’ 이라는 이름으로 밭에서 자유로운 수분을 통해 유전적으로 다양한 밀 개체군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주로 수확이 잘 되거나 병충해에 강한 품종만 골라 심다 보니, 밀의 다양성이 점점 줄어드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블레 데 파퓰레이션 밀은 다양한 개체가 함께 자라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밀이 농부의 농사짓는 환경에 적응하기 때문에 ‘블레 페이상(ble paysan, 농민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 땅에서의 밀농사도 날로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남쪽의 밀밭은 이른 봄, 냉해와 습해로 생산량이 50% 이하가 된 곳들이 많았습니다. 다 자란 밀이 폭우에 쓰러져 수확을 포기해야 했던 농부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늘어났습니다. 점점 기후위험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YQ, 블레 데 파퓰레이션, 그리고 라당스 밀은 다양성과 탈중앙화,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농부와 작업자, 소비자들의 고민과 실천을 담고 있습니다.
마르쉐는 지난해 햇밀장에서 모은 열 가지 밀이 함께 자라는 들판을 상상하면서, 열 가지 밀의 묶음을 함께 뿌리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라당스밀이 자라는 동안 밀과 농가의 안부를 묻고 또 작업자, 소비자와 함께 농장을 방문하면서 씨앗과 농사, 그리고 우리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경험을 나누어 왔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지난해 심은 밀은 두 농가에서 튼실한 결실을 맺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첫 수확한 라당스밀이 2025 햇밀장에서 빵과 맥주가 되어, 함께 맛보며 햇밀장 10주년을 축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라당스밀이 각 농가의 땅에 맞춘 각 농부만의 밀로 계속 이어져가길 기대합니다. 언젠가는 이 밀이 특정 농부와 지역의 라당스로 자리잡고, 곳곳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손잡는 ‘라당스서클’이 만들어질 날을 꿈꾸며 올해 다시 열 농가의 열 가지 밀을 모아 만든 씨앗을 더 많은 농부의 밭에 뿌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앙리마티스의 그림 라당스 La Danse는 사람들이 함께 손잡고 춤추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라당스밀(La Danse Wheat)은 농부와 작업자, 그리고 소비자들이 함께 손잡고 추는 춤을 상징합니다. 라당스를 통해 우리의 대지가 더욱 아름답게 지켜지고, 삶과 식탁도 건강하고 풍요로울 수 있기를 함께 기원합니다.
2025 라당스가 만들어지기까지
2016년 7월 햇밀장 개최
- '이땅의 다양한 밀들'을 주제로 전시 진행
- 밀의 다양성에 대한 다채로운 전시, 토크, 워크숍 진행
2024년 8월 햇밀장 ‘함께추는 춤, 라당스’를 개최
- 열 농가의 열 가지 밀을 모아 2024 라당스밀을 만듦
- 라당스밀을 맛 보고 햇밀맛맵에 맵핑하는 참여형 전시 진행 (with 디자이너 강은경 작가)
- 영국의 YQ밀 소개 (with 고민경 베이커)
* 2024 라당스 구성_총 10종
- 재래종 5종: 검은밀(제주자연농원), 경기참밀(농부 이철규), 남도참밀(씨락간), 앉은키밀(봄이네살림), 양평참밀 (양평농업기술센터)
- 보급종 5종: 금강밀(볍씨학교), 백강밀(농사짓는목수), 새금강밀(더불어농원), 아리흑밀(황금빛들녘-무일농산), 황금알(양평농업기술센터)
2024년 10월
- 햇밀장에 참여하는 3개의 농가에서 라당스밀 각 3kg 파종
2025년 6월
- 2개 농가에서 각기 105kg, 40kg 생산
2025년 7월
- 이히브루에서 라당스맥주 출시, 괴산과 의성 라당스밀 작업 테스트
2025년 8월 24일
- 열번째 햇밀장 <햇밀여정:점,선,면> 개최
* 2025 라당스 구성 _총 10종
- 재래종 6종:검은밀(농부 이철규),경기참밀(농부 이철규), 남도참밀(너멍굴농장/진남현), 앉은키밀(더불어농원/권태옥,신두철), 봉화참밀 (불유구/박성인), 김천참밀 (신기네집/정운오)
- 보급종 4종:금강밀(농사짓는목수/김수정, 임태희), 백강밀(성한농산/박성한), 아리흑밀(황금빛들녘-무일농산), 황금알(대흘농부/제주밀연구회 박승준)